영어 에피소드들
네이티브가 아니다보니 영어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겪었는데 기록 차 남겨본다.
How are you?
How are you. 영미권 친구들의 공통된 인삿말이다. 보통 “I’m good, how are you?” 하고 대답하면 상대도 “I’m great, thanks” 하고 넘어간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러하다).
근데 이거 뜻이 “요즘 좀 어때?” 혹은 “어떻게 지내?” 이런 뜻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누가 하와유? 하면 진짜로 내가 최근에 있었던 일들과 고민과 상황을 주절주절 얘기했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꽤나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적절한 번역은 “안녕하세요?”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액면 뜻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답을 해버렸더니 상대도 당황했겠지..
지금은 “I’m great, thanks. How about you?” 정도로 넘어간다. 오히려 나는 이런 느슨한 관계가 더 마음에 든다.
양꼬치
아들이 옆집 사는 찰리랑 꽤 친해졌는데, 그래서 종종 옆집 애엄마와도 마주치게 된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이면 하와유 하고 말겠는데 너무 옆집이고, 또 우리 애를 잘 봐주시기도 해서 이런저런 스몰톡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또 아들이 찰리네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쌩 하고 뛰쳐나가서 둘이 신나게 놀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찰리네 엄마가 와 계셨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자기네들이 곧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갈거라서 미리 알려준다고 했다. 그때가 오후 4-5시 쯤이었는데, 아무리 늦었어도 이 즈음에 점심을 먹다니, 과연 유럽 친구들의 식사 시간은 꽤 늦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스몰톡 겸 우리도 곧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갈 거라고 말하고, 양꼬치를 먹으러 갈거라고 말을 하려했는데 “양꼬치”라는 단어가 도저히 영어로 떠오르지를 않아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Sheep Stick”이라고 해버렸다. 그때의 찰리네 엄마의 표정은 조금 복잡미묘하달지… 새하얀 털을 가진 양을 꼬챙이로 찌르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최소한 “Lamb”은 떠올렸어야 했는데 ㅠㅠ 아무튼 꽤나 부끄러운 에피소드 중 하나다.
애호박
또 얼마전에는 앞집 사는 할아버지네 딸이 문을 두드리길래 열어줬더니, 내 팔뚝의 두배정도는 되어보이는 뭔가를 가져와서 “코젯”을 준다고 했다. 찾아보니 영국에서는 애호박을 Courgette 이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Zucchini 라고 부르더라고. 아무튼 자기네 텃밭에 애호박을 심었는데 너무 잘 자라서 가져다 준다며, 너네 한국에서 왔으니까 이걸로 김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정말 순수하게 악의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건네주길래 ‘그치… 찾으면 애호박 김치같은게 있을 것 같기도 하네…’ 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히 받았다. 김치가 아니라 애호박 전을 더 많이 해먹지 않나 싶긴 한데… 아무튼 실제로 애호박으로 담그는 김치 레시피는 당연히 있더라.
뭔가 이런 선물을 받았을 때 땡큐 말고 영어로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구가 필요하다.
거시기
뭔가 영어도 한국어도 애매하게 쓰면서 생활하다보니 점점 0개국어로 수렴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 영어로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하다가 분명 앞에서도 말했고 한국어로도 알고 있는 쉬운 단어인데 영어로 안떠오를 때가 있다 (사실은 많다). 그럴 때는 예전에는 그냥 엄…. hmm…. 하면서 길게 생각을 해서 어떻게든 단어를 떠올려서 말했는데, 이제는 그러다보면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듯 해서 그냥 적당히 안떠오르면 “the thing” 혹은 “that thing”으로 퉁치고 넘어가버리는데 이게 은근히 말이 되고 상대방도 적절히 이해를 하는 것 같다. 마치 한국에서 “거시기” 하면 대화의 맥락에 따라서 화자들이 다 적당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고 보니 시덥잖은 이야기들 뿐이네. 소소한 일상이지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