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요즘 유튜브를 보니 바람의 나라 클래식이 다시 유행하고 있더라. 신령의 기원, 백호참, 백호검무, 삼매진화, 일월대도 휘두르는 소리, 등등 그 시절 효과음을 듣기만 했는데도 한창 바람에 미쳐 살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게 신기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되다보니, 문득 그때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힘겹게 마련한 귀중한 아이템이, 죽으면 떨어져서 다른 유저가 먹고 도망갈까봐 늘 스트레스 받아서 항상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템 위주로 구하고 다녔는데 이건 지금의 리스크 회피 성향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래서 환두대검이나 진성검보다는 수리가 안되어도 이가닌자의 검을 애용했던 것 같다. 애초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그런 식의 아이템을 맞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후 관계가 헷갈리는데, 요즘 아들이 하는 걸 보면 후자가 좀더 지분이 큰 것 같긴 하다.
쇄자황금투구처럼 누가 봐도 멋지고 좋은 아이템을 끼고 사냥하는 유저들도 당연히 부러웠지만, 내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던 건 그런 아이템의 도움 없이 그냥 체력/마력이 높아서 맨장비로도 사냥터를 휩쓸고 다니던 고랭커들이었다. 그때부터 아이템 빨에 의존하는 것은 멋있지 않다고 여기는, 기묘하게 왜곡된 취향이 자리잡은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삶의 태도에도 꽤 영향을 미쳐서, 정신력으로 체력을 이길 수 있다던지, 아니면, 예를 들어, 테니스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실력이 뛰어나면 고가의 장비가 없어도 된다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다. 당연히 나이를 꽤 먹은 지금은 이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프로들이야 말로 자신의 장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뛰어난 사람들이고 그런 장비의 능력치를 100%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휘황찬란한 아이템이나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 없이도 묵묵하게 자기 능력만으로 강력한 몬스터를 때려 잡는 그런 낭만을 직접 플레이하며 겪어보았기 때문에 다른 데에도 이런 낭만이 새어나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내 마음 한켠엔 현자가 자리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쇼츠로 바람의 나라를 하도 봤더니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하게 되는구나. 유튜브를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