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jaro Budgie (실패)
험난한 리눅스 데스크탑의 길
오랜만에 집 데스크탑에 새로운 리눅스 배포판을 시도하다가 장렬히 실패한 기록을 남겨본다.
서론
일단 내가 어떤 OS를 쓰고 싶은지 몇 가지 조건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봤다.
- 일단 디자인이 예뻐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내가 보기에) 못생긴 UI에서 작업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 최고봉은 애플이라고 생각한다.
- 드라이버 지원이 잘 되면 좋겠다. 일일이 하드웨어 알아내서 호환되는 드라이버 설치하고 … 사실 하려면 할 수 있고 또 해봤던 일이긴 한데, 이제 귀찮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직접 설치 해야겠지.
- 안정적이면 좋겠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는데, 사용하면서 크래시가 아주 드물게 발생했으면 좋겠고, 설령 크래시가 나더라도 든든한 개발진이 뒷받쳐줘서 다음 릴리즈에 잘 수정되면 좋겠다.
- 쓰기 편하면 좋겠다. 여기에도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미 내 손에 익어있는 단축키나 설정을 쉽게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고, 이게 안된다면 OS가 디폴트로 제공하는 여러가지 단축키/설정이 설득력 있으면 좋겠다. 마치 이맥스의 키 스트로크처럼.
그럼 그동안 내가 써온 배포판들은 뭐가 있을까? 각 리눅스 배포판에 대한 장단점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쓴 글이 지천에 널렸으니, 나는 내가 시도하거나 사용해봤던 배포판 및 DE(Desktop Environment) 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경험에만 집중해서 정리해보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거라 순서에는 큰 의미가 없다.
- Ubuntu: 대략 2000년도 중반부터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배포판. 나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처음 썼을 때에 비해 디자인과 안전성은 굉장히 발전했지만, 뭔지 모를 2%의 아쉬움 탓에 늘 다른 배포판에 눈을 돌리게 된다.
- Debian: 우분투의 뿌리가 데비안인걸 알고 시도해봤으나, 내 눈에 너무 못생긴 인터페이스로 인해 빠른 포기. 최근에는 어떨지 궁금하지만 시도해보진 않을 예정이다.
- CentOS: 학교 전산실과 과제 서버의 주 OS 였던 기억이 있다. 거의 CLI 로만 사용했었고, 첫 리눅스를 데비안 계열로 시작했었기 때문에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레드햇 계열에 대한 이유 모를 반감이 있어 개인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최근에 뭔 일 있는 것 같던데 애초에 안써서 잘 모른다.
- Fedora: CentOS를 쓰다보니 역시 그 뿌리도 궁금해서 시도해봤다. 뭐 최신 패키지가 엄청 빨리 반영돼서 불안정하다길래 얼마나 불안정한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시원하게 커널 패닉 먹고 그대로 우분투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 Linux Mint: 배포판 인기 랭킹 사이트인 DistroWatch를 처음 알게 되었을 당시 1위였던 배포판이라 시도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쁘지 않은 디자인과, 녹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녹색 계열 디자인만 보고 있으니 지루해져서 다시 탈출.
- 하모니카: 2010년대 초에 뭔 정부 주도 리눅스라는 재미난 기사를 보고 안쓰던 노트북에 시도해봤었다. 인스톨러에서 보이는 디자인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만 드라이버 이슈인지 제대로 설치가 안돼서 포기.
- Ubuntu Gnome, Kubuntu: 우분투를 메인으로 쓰던 당시에 유니티 DE가 너무 별로였어서 지속적으로 탈출하려 했었다. 그러다가 리눅스 배포판이 어떻게 꾸려지는지, 커널과 DE의 관계, 메인스트림 DE인 Gnome과 KDE를 알게 되었고, 바로 사용해보았다. 사실 KDE의 디자인이 더 취향이라 쿠분투를 주력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그당시 KDE는 창 조절을 하다가 뻗거나 글자가 삐져나오거나 하는 등 내 기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어서 Gnome으로 안착했다. 우분투도 결국 유니티를 버리고 Gnome으로 돌아왔으니 어찌보면 잘 선택했던듯.
- Xfce: 얘는 분명 써봤던 기억은 있는데 어떤 배포판에서 쓴 건지 기억이 안난다. 주분투를 설치했었던가? 그냥 DE만 따로 깔아서 시도해봤었던가? 윈도우 95 테마가 끌려서 시도했다가 금방 질려서 다시 돌아왔던 것 같기도 하고…
- Ubuntu MATE: 끈닷넷님의 최애 배포판이었던 기억이 있다. 옆에서 봤을 때 내 취향은 아니라서 보는 걸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사족으로 나는 여전히 마테가 아니라 메이트로 읽힌다 😅.
- Ubuntu Netbook Remix: 홈페이지마저 사라진 비운의 배포판이다(…) 당시 굴러다니던 넷북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설치해서 써봤지만, 애초에 넷북 같은 애매한 머신은 사지말자는 교훈만 얻었다. 값 싼 머신에는 다 이유가 있다.
- elementaryOS: 어느 날 방문한
디스트로워치에서 1등 먹고 있길래 슬쩍 봤더니 디자인이 너무 이뻐서
뒤도 안돌아보고 메인 머신에 깔았다가 갖은 버그와 불안정한
인터페이스에 호되게 당한 뒤로 멀리하고 있는 배포판. 당시 내가 썼던
버전이
1.
대도 아닌0.
대의 Freya 였으니, 최신인5.
대의 Hera는 좀 괜찮을려나? 궁금하긴 하지만 써보고 싶진 않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낭비해온 것 같다(…). 아무튼 여러가지를 써보면서 지금은 우분투+그놈 환경에 정착하였다.
사실 그동안의 배포판 떠돌이 생활은 1번 조건인 이른바 “심미적(aesthetic) 디자인”이 아쉬웠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애플 및 유사 애플에 대한 많은 시도를 해왔다. 애플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에 돈은 쓰기 싫고 해서 해킨토시를 한번 시도해볼까? 했지만 이건 2번과 3번 조건을 매우 위반하는 일이라 당연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따르는 몇몇 리눅스 배포판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배포판들은 1번 조건 외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항상 개발 머신에는 2, 3, 4번만을 만족하는 우분투가 깔려 있었다.
그러다 어찌저찌 맥북을 사용하게 되면서 1번은 정말 만족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나머지 부분이 아쉬웠다. 2번이야 애플은 지들이 만든 하드웨어만 지원하면 되니까 애초부터 논외이고. 의외로 3번과 4번에서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고, 결국 맥북은 중고로 팔게 되면서 다시 리눅스 배포판을 찾아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만자로 + Budgie
그러다 얼마전부터 다양한 이유로 아치 리눅스 계열 파생 배포판인 Manjaro(이하 만자로), 특히 Manjaro Budgie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는데,
- 컨테이너에서 데비안 패키지 관리자인
apt
의 속도가 (네트워크 이슈가 아니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아 찾다보니 이 방면 속도 최고봉은 아치의pacman
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 예전부터 아치 계열 파생 배포판인 만자로를 메인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하나 둘 늘어나는 차라 궁금하기도 했고1,
- 마침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해왔던 배포판 떠돌이 삽질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던 차에,
- 같은 분이 쓴 이 글과 유튜브 검색 결과로 보게 된 이 영상에서 이쁜데 안정적이기까지 한 Gnome 기반의 DE인 Budgie를 간접 경험하면서,
도저히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결국 만자로+Budgie를 시도하게 되었다.
물론 결과는 제목에서 보듯이 장렬하게 실패했는데,
- 일단 만자로 공식 설치 가이드에 따라 UEFI + DD 모드로 부팅 디스크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 하지만 디스크로 부팅하는데서 1차 실패를 겪었는데, 그래픽카드 드라이버를 free로 잡았더니 내 머신에 깔린 1070ti를 인식하지 못해서 Display Manager 구동이 안되었다(…). non-free 드라이버로 시도하니 인터넷에서 받아서(?) 어떻게 꾸역꾸역 부팅과 설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 설치 후 첫 롤링 업데이트에서 2차 실패를 겪었는데, 일단 기본 kernel
버전인
linux56
이 unsupported 인데다2, 여기에 맞는 엔비디아 드라이버의 디펜던시가linux-latest
랑 안맞아서 업데이트가 안되었다. 그럼 그렇지. 엔비디아가 늘 발목을 잡는다. 이쯤에서 그동안의 경험 상 ‘아 이건 안될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에러 메시지의 힌트대로 꼬인 패키지를 삭제한 후 재시도하니 잘 되었다. - 하지만 롤링 업데이트 후에 재부팅을 하면 아예 부팅이 되지
않았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그냥 BIOS 화면에서 다음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찾아보니 최신 커널(
linux59
)과 엔비디아의 조합이 최악이라는 말이 있어 커널 버전을 변경해봤지만3, 여전히 안되었다. 커널 목록에서 조회되는 모든 LTS 커널을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안되었다. Experimental 커널도 안되었다.
여기까지 대략 3시간에 걸친 삽질 끝에 만자로 Budgie 1차 시도는 실패로 결론지었다. 역시 리눅스 데스크탑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하지만 잠깐 사용해본 소감으로는,
pacman
의 속도가 매우 훌륭하다. 처음에는 미러가 미국으로 되어 있어서 다운로드 속도가 굉장히 느렸지만, 한국 미러로 바꾸고 나니 이게 정말 롤링 업데이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속도가 빨랐다.- Budgie도 굉장히 근사하다. Gnome과 KDE에 대한 고찰 글을 쓰신 야관문 담금주 님의 글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유튜브 영상에서 실제 디자인을 보게 된 이 새로운 DE는, 과연 글에서 적은 것처럼 Gnome의 안정성과 맥에 가장 가까운 철학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실패하였지만, pacman
과 Budgie를 (잠깐이나마)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둘 다 꽤 내 취향이다. 그래서
다음 업무 환경을 꾸릴 때에는 Ubuntu
Budgie를, 취미 머신에는 pacman
사용을
위한 아치 계열을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3시간 삽질한 것치곤
수확이 있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