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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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요즘 나의 말 버릇이자,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말로 뱉으려고 하는 문장이다.
분명 여러 번 말해준 것 같은데 여전히 이런다고? … 그럴 수도 있지. 다시 한번 차분차분 말해주고 기억할 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 급한거 아니다. 어렵지 않다.
이걸 이렇게 해왔다고? … 그럴 수도 있지. 왜 이렇게 했는지, 어떤 의도로 접근한 건지 서로 얘기를 나눠보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항상 정답은 아니고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을 시킨다고? … 그럴 수도 있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을테고 시킨 이유도 있을테니.
옛날의 나는 꽤 강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때, 나에게는 항상 “정답”과 “옳음”이 있었고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관련된 정의를 틀리면 나도 모르게 날이 선 채 그건 틀렸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나의 이런 기준에 따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명확했다. 이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게 모두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정말로 감정적이고 사회적이어서, 면전에 대고 “당신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설령 정말로 그 주제에 대해서 그 사람이 틀렸을지라 하더라도, 거의 항상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표현도 중요한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또는 “옳다”고 생각했던 그 일이, 사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을 뱉으면 신기하게도 내 단단했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도 한층 편해진다. 내 정답과 옳음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게 신경쓰이고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어서 불만도 많고 예민했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인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불만과 예민함이 덜어진다. 뱉은 말이 생각에 스며들어 그것이 실행으로 이어져서 더욱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잘 생각해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의 취향과 철학과 에고에 관련된 것들이다. vim 보다는 emacs를, 동적 타입보다는 정적 타입을, OOP보다는 함수형을, 복잡한 로직보다는 데이터와 로직을 분리하기를 좋아하는 등. 어느 것도 한쪽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내 의견을 세우기보다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과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쪽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면 나의 경험과 시야도 넓어지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서 결국에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