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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이란...

대체 뭘까

2017-05-22

태그: think

미식: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

바야흐로 맛집의 시대다. 사람들은 전통 음식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향유하고 그걸 SNS에서 공유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더 맛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너도 나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느라 바쁘다.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평양냉면이다. 북한의 평안도 지역에서 유래했고, 특이하게 동치미 국물 대신 고깃국물을 쓰고, 메밀로 면을 만든 냉면이다. 수요미식회, 그리고 그 이전의 몇몇 맛집 탐방 프로그램으로 인해 SNS에서도 뜨거웠고, 뜨거운 요리다. 국내의 유명 가게로는 우래옥, 평양면옥, 을밀대가 있다.

면류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당연히 평양냉면도 내 입맛에 맞을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 웬만하면 내 입맛에 맞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과메기라던가, 최근에 즐기게 된 성게라던가, 강하게 삭힌 것은 못먹지만 서울식이라면 꽤 맛있게 먹었던 홍어라던가. 이정도면 나도 미식가의 반열에 털 끝 하나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지도? 거기에 평양냉면까지? 그러한 망상을 하던 도중 드디어 심심함을 못이기고 강남의 우래옥을 찾아 갔다.

평소 생각하던 ‘냉면집’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궁중 한식점 같은 휘황찬란한 가게가 나를 반겼다. 우레옥이 아니라 우래옥이었구나. 또 오게 될 집이라니. SNS에서 사람들이 평양냉면에 대해 남기던 의견 그대로인 가게 이름아닌가. 나도 또 오게 되겠지. 국내 미식가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평양식 냉면은 무슨 맛일까. 들뜬 마음으로 냉면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미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냉면, 아니 평양냉면을 한 젓가락 먹은 순간 머리속에는 온통 물음표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조리하다 만 걸 내놓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 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있었던가? 아. 생각해보니 똠양꿍이 그러했고 고수가 그러했지. 아무튼 내 입맛에는 도무지 맞지 않았지만, 면류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꾸역꾸역 다 먹고 난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식이란 대체 뭐지.

그간 나름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왔고, 미식의 메인 스트림은 꽤나 잘 따라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취향 타는 사람이었군. 회를 초장 맛으로 먹는 건 먹을 줄 모르는거라며 친한 친구들을 장난삼아 나무라던 내가 떠올랐다. 미쳤다고 그런 짓을. 나도 결국 하나의 취향일 뿐이었는데.

미식을 좇아 맛 본 평양냉면 한 그릇이 가르쳐준 겸손의 교훈이었다.